검사출신 민경철 변호사 24시 성범죄 케어센터
성폭력 피해자의 올바른 대처법 본문
최근 발생한 유명 음악 PD 사건 피해자의 변호사로서 피해자의 신속하고 올바른 대응의 중요성을 절실하게 느끼고 있다. 누구나 이와 같은 일을 당하게 되면 놀라고 당황하여 신속하고 올바른 대처를 하기가 쉽지 않다.
요즘 같은 시대는 옛날처럼 어두운 데 가다가 갑자기 누가 나타나서 강간하는 식의 성범죄는 드물다. 가장 많이 일어나는 성범죄는 ‘지인들하고 술을 먹었는데 만취 상태에서 정신을 잃고 일어나 보니까 남자의 방이었다거나 혹은 모텔이었다’ 하는 사건이 대부분이다.
술 마시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모텔... 현명한 대처 방식은?
예컨대, 모텔에서 일어나 보니 술에 취해 어젯밤 기억은 가물가물하고, 내 옷은 다 벗겨져있고 옆에 남자가 자고 있는 상황을 가정하자. 일단 현명하게 대처를 해야 되는데 정신이 하나도 없으니까 가정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이 경우 현장에서 남자를 자극한다면 또 다른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추가 범행이 발생하는 등 더 큰 피해를 당할 수도 있기 때문에 조심히, 그리고 냉정하게 대처해야 한다.
이런 상황이라면 우선 가장 가까운 친구나 지인한테 카톡 같은 SNS 메시지를 보내고 증거자료를 남기는 것이 중요하다. “어딘지 모르겠는데 술 먹고 깨보니까 옆에 누가 있어...” 이렇게 먼저 메시지를 남긴 뒤 일단은 현장을 무사히 잘 빠져나오는 것이 중요하다.
가해자가 지인이라면 전화, 카톡 등을 절대로 차단하지 말고 받는 대로 캡처하고, 통화 내용 자동 저장 앱/기능이 있다면 활성화해 두어야 한다. 지인 가해자의 경우, 사건 직후에는 자신의 행동을 시인하거나 사과하는 언행을 하였다가 수사 진행 중 입장을 바꾸는 경우가 많다.
성폭행이 있었을 수도, 없었을 수도 있는데 나중에 그 사람이 말을 바꿀 가능성에 대비해야 하는 것이다. 통상 사건은 두 가지 흐름으로 진행된다. 첫 번째는 성관계는 하지 않았다. 두 번째는 관계는 했지만 동의해서 했다.
관계 여부를 입증하기 위해서는 즉각 112에 신고를 하면 된다. 그러면 담당 형사가 찾아오는데, 그 형사를 따라 해바라기센터로 가게 된다. 해바라기센터에서는 병원과 연결해서 몸속에 남자의 DNA가 남아있는지 이런 것들을 검사하는 과정을 가르쳐주는 등 대처법을 조언해 준다.
가해자가 “동의하에 이루어진 일”이라고 발뺌하면?
대부분 사건에서는 여성의 동의 여부가 최대의 쟁점이 된다. 실제 여성이 동의했을 수도 있다. 일어나 보니까 기억이 안 날 뿐이지.
하지만 잘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동의 여부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술에 만취돼서 남자의 등에 업혀올 상황이었다면 애당초 동의라는 개념이 성립하기 어렵다.
따라서 술자리에 함께 있었던 일행에게 당시 상황을 파악해보는 게 좋다. 술이 잔뜩 취한 여성을 들쳐매고 가서 모텔로 데리고 가서 성관계를 해놓고 동의 운운하는 것은 범죄가 될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모텔 CCTV를 확인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환하게 웃으며 들어갔는지, 소위 ‘떡실신’ 된 상황에서 업혀서 들어갔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평상시 그 남자와 성관계를 가지던 정도의 사이가 아니라면 성폭행이 인정되는 경우가 많다.
결과적으로 성폭행을 당한 것이라는 판단이 들면 망설이지 말고 형사전문변호사(성범죄는 형사사건에 속한다)를 찾거나 경찰에 즉시 신고해야 한다. 경찰관의 안내에 따라서 최대한 신속하게 수사가 개시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성범죄 사건에서 피해자가 취해야 할 가장 기본적인 조치인 것이다. 특히 DNA는 72시간이 지나면 검사가 안되기 때문에 시간을 놓치면 안 된다는 점을 유의해야 할 것이다.
기타 대응들
당장 생각하기에는 피해가 경미하여 법적 절차를 밟아야 할지 결정이 쉽지 않거나 사선 변호사를 선임할 생각이 있을지라도 성폭력 사건이라면 수사기관(경찰)이 피해자에게 "피해자 국선 변호사의 조력을 원하는지" 질문을 한다.
그때는 일단 필요하다고 대답하는 것이 좋다. 나중에 법적 절차를 밟지 않더라도, 혹은 개인적으로 변호사를 따로 선임하더라도 수사 초기 단계에 피해자 국선 변호사가 지정되어 있으면 절차적으로 유용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당시 상황을 그때그때 기록을 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성폭력 피해를 당항 상황에서 말이나 글로 상황을 정리한다는 것은 보통 사람에게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기에 시간이 지나 진정되었을 때, 몇 달 이상 걸리는 수사 기간 동안 필요할 때 내 기억을 되살려 잘 정리할 수 있도록 최대한 간단한 방법으로 세부사항들을 메모로 남겨 놓는 것이 좋다.